저가 경쟁 입찰에 내몰린 관로공사, 도시가스 안전까지 위협
건설경기 불황, 폭염도 무릅 선 시공사, 현실은 벙어리 냉가슴

[산업인뉴스 황무선 기자] 일부 도시가스사의 무분별한 저가 입찰이 확대가 최근 가스공사업계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SK이노베이션E&S의 계열사인 부산도시가스에서 시작된 최저가 입찰이 모든 계열사로 확대된 데 따른 일선 시공사들의 불만이 최근 한계에 도달 했다. 시공업계는 “이같은 상황이 무리한 공사 강행으로 이어지며 가스사고 또는 인명사고로 나타나고 있다. 자칫 부실공사나 대형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가 없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국내 건설경기 악화로 급격히 일감이 줄어든 상황이 계속되며 대다수 시공사들이 회사 운영을 위해 내키지 않아도 도시가스사의 최저가 입찰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결국 손실을 줄이기 위해 무리한 공사를 강행할 수 밖에 없고, 때때로 뜻하지 않은 사고가 발생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도시가스 배관공사 현장. [황무선 기자]
도시가스 배관공사 현장. [황무선 기자]
SK이노베이션E&S 계열 도시가스사의 공급 지역. [ 사진=SK이노베이션E&S 홈페이지]
SK이노베이션E&S 계열 도시가스사의 공급 지역. [ 사진=SK이노베이션E&S 홈페이지]

뙤약볕에도 쉴수 없는 도시가스 시공현장

이상 기후와 갑작스러운 폭염으로 일부지역의 한낮 기온이 40℃까지 기록하는 가운데 7월 8일 도시가스 관로건설 현장에서 한 작업자가 온열 질환으로 약 3시간가량 의식불명에 이른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가 발생한 곳은 SK이노베이션E&S 계열사인 코원에너지서비스의 여주 관로공사 현장. 당시 해당 지역은 한낮 최고 기온이 40℃까지 치솟았고, 정부를 비롯해 관계기관에서는 온열질환 주의보가 계속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현장 관계자가 피해자를 발견해 신속한 응급조치로 큰 인명피해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 같은 더위 속에 지칫 사망 사고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는 게 사고를 접했던 시공업계 한 관계자의 생생한 증언 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대한기계설비공사협회 가스공사협의회 측은 “사고의 근본 원인이 공사를 저가입찰로 발주하고 있는 도시가스사에게 있다 ”고 목소리를 높혔다.

폭염이 계속되는 시기 작업자의 안전을 위해 현장에서는 작업자에게 충분한 휴식시간을 줘야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저가로 공사를 수주한 입장에서 현실은 녹록치 않다는 설명이다. 시간이 곧 비용인 시공 현장에서 공사 시간 연장은 곧바로 장비대여료와 인건비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SK 계열 도시가스사의 경우 최근 회사 차원에서 최저가 입찰을 확대하며 최근 관로공사 대한 낙찰가는 도시가스사가 제시하는 설계가의 40~50% 선까지 무너진 상황이란 게 여러 시공사 대표들의 주장이었다.

이와 관련 00사 대표는 “인건비 등 공사 수주를 통해 고정비를 감당해야 하는 시공사 입장에서는 비록 적자라도 울며 겨자먹기로 공사를 수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결국 현장에서는 장비대여료나 인건비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무리한 공사를 강행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어 그만큼 사고 위험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사고 등이 발생치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만, 공사 진행에 여유를 가질 수 없는 현실이란 이야기 였다.

지난해 9월 25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에서 발생한 중압관 파손사고 현장. [사진=가스안전공사]
지난해 9월 25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에서 발생한 중압관 파손사고 현장. [사진=가스안전공사]

무리한 공사와 규정 위반, 그리고 가스사고

실제 유사한 상황으로 인한 가스사고도 발생 했다. ’23년 9월 25일 오후 1시 18분경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187-5 앞 도로에서 저심도 중압배관의 보완(이설)공사를 위한 굴착 공사 중 도시가스 배관에 구멍이 뚫리는 사고가 발생한 것. 역시 해당 사고가 발생한 곳도 이번에 문제가 된 코원에너지서비스의 관로 공사 구역이었다.

더욱이 사고로 손상을 입은 공급관은 0.85MPa(8.5kg/㎡) 300A PLP배관으로 1994년 12월 발생한 아현동 사고 당시의 공급압력과 비슷한 압력의 배관이었다.

다행히 신속한 대응과 후속 조치로 폭발 등 사고로 인한 가스폭발 등 2차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스안전공사의 사고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인근 CNG충전소 2개소를 비롯해 주택 및 업무용 건물 등 1,448개소 가스공급이 약 두 시간 반(오후 1시 32분~오후 4시 1분) 동안 중단됐다.

당시 사고의 발생 원인은 시공자의 안전규정 미준수였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시공사가 규정을 미준수하며 공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원인이었다는 게 시공업계의 주장이다. 또 실제 사고로 이어지진 않아 알려지지 않고 덮인 사고는 더 많다는 설명이었다.

가스안전공사에 따르면 당일 사고는 00종합건설 굴착작업자가 도시가스사 직원이 입회하지 않은 상황에서 공사를 시작한 것이 원인이었다. 공사를 수주 받은 시공사는 굴삭기를 이용해 공사를 위한 사전작업 차원에서 아스콘 제거작업을 진행하던 중 배관을 파손한 사고였다. 굴삭기를 이용해 아스콘을 파쇄 하는 과정에서 굴삭기의 길이 45cm 브레이커(breaker)가 지하 40cm 깊이에 매설된 도시가스배관에 손상을 입혀 가스가 누출됐다.

현행 도시가스사업법에 따르면 도시가스배관 손상방지기준(제30조의6)에 따라 배관 주위를 굴착할 경우 시공자는 도시가스사업자의 입회하에 공사를 진행토록 규정하고 있다. 또 배관 매설지역 1m이내에서는 인력으로 굴착 작업을 진행해야만 한다.

그러나 당일 사고 현장에서는 법으로 규정된 기본 규정 모두가 지켜지지 않았다. 배관매설구간에서는 수작업이 아닌 굴착기를 이용한 굴착공사가 진행됐고, 도시가스사 직원의 입회도 역시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도시가스측은 “가스배관의 보호를 위해 해당 배관은 철근콘크리트 방호조치가 돼 있었다. 이중 포장으로 오인한 굴착 공사자가 콘크리트를 파쇄 하는 과정에서 가스배관을 손상시킨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시공사측은 “성남대로 교통량과 도로굴착 허가시간을 고려해 빠른 작업 완료를 위해 도시가스 안전관리자의 입회 전 임의 굴착을 시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시공업계의 주장처럼 공사 감독관이 오기전 작업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입회 공사를 위한 사전 굴착을 진행한 것이 사고의 원인이었다는 설명이다.

도시가스 관로 공사를 시행하는 도시가스 공사업체들은  일선 수요가와 도시가스를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국내 도시가스 대중화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황무선 기자]
도시가스 관로 공사를 시행하는 도시가스 공사업체들은 일선 수요가와 도시가스를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국내 도시가스 대중화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황무선 기자]

시공사는 한 식구, 산업발전 위한 상생이 더 중요

최저가 입찰과 관련한 도시가스 업계 내에서의 우려도 있었다.

서울지역 A 도시가스사 관계자는 해당 사실과 관련 “도시가스사와 시공사는 한솥밥을 먹는 식구이자 실과 바늘과 같은 관계”라며 “시공사는 일선에서 신규 수요가 개발과 도시가스 안전 확보에 기여하며 도시가스 대중화에 기여해 왓다. 최근 공급량 감소와 공사 물량 축소로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럴 때 일수록 서로 협력하며 상생을 모색해야 도시가스 산업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B사 실무진 역시 "최근 SK이노베이션E&S가 최저가 입찰을 확대하고 있는 것을 전해들어 알고 있다. 시공사는 단지 도시가스사의 관로공사 뿐만 아니라 긴급공사 등 도시가스사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한 공사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어 무엇보다 원활한 협조관계가 중요하다"며 “최저가 입찰을 확대할 경우 회사 입장에서 일부 비용절감 등을 기대할 수는 있겠지만, 향후 시공사와의 원활한 협조관계를 깰수 있고 응급공사 등이 발생했을 때 문제가 될 수 있어 자사에서는 해당 방식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해당 사건과 관련 도시가스사측은 “저가 입찰이 확대 시행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시공업체가 제시한 금액에 낙찰이 이뤄진 것”이라며 “오히려 그동안 부풀려진 공사비가 현실화 된 것이다. 절감된 공사비는 도시가스사의 수익이 아닌 관로공사 등 새로운 투자비로 사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온열 환자 발생과 관련해서도 협력업체에 정부와 산업안전공단에서 제시한 안전기준을 준수할 것을 공문 등을 통해 안내하고 있다”며 “해당 환자는 잠시 어지러움을 느끼고 당일 현장을 떠났고, 다음날 다시 공사현장에 투입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