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공급 고객마인드 제로 도시가스, 문제 생기면 모두 '네 탓'
건축 과정 충분한 소통만 됐어도 수천 만원 손실 발생 안해
[산업인뉴스 황무선 기자] 도시가스 공급규정 개선에도 불구, 여전히 도시가스사의 공급권을 볼모로 한 갑질 논란이 여전하다. 80~90년대 급격한 성장기를 이뤘던 도시가스산업이 최근 정체기를 맞아 수요가 감소하며 발생하는데 따른 부작용이 원인이란 분석이다. 이러한 상황이 이어지자 한솥밥을 먹으며 도시가스 수요 확장에 기여했던 가스시공업계의 불만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공급 독점권을 가진 도시가스사들이 수요 감소와 관련해 최근 그 손실을 줄이는 방안으로 기존 공사비와 관로 건설을 줄이는 방법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부작용으로 가스시공업계를 비롯해 관련 업계의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내 입장 먼저인 도시가스, 줄줄이 떠나가는 고객들
수요개발 주역인 시공업계, 저가 입찰에 줄도산 위기
서울 역삼동 신규 오피스텔의 가스공급과 관련해 최근 도시가스사와 설계사무소, 시공업체와의 갈등이 공급 독점권을 가진 도시가스의 갑질 논란으로까지 이어진 사건이 발생했다.
우여곡절 끝에 10월 입주를 앞둔 해당 오피스텔의 가스공급은 별탈 없이 끝났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설계업체와 B가스시공사는 당초 계획된 공사가 뜻하지 않게 변경되며 해당 공사로 인해 최소 수천 여만원의 손실을 떠안아야 했다. 건축물 완공 전에 해당 사실을 확인하고, 양측의 협의만 잘 이뤄졌어도 발생하지 않았을 손실이라 아쉬움이 남는다.
도시가스사는 가스시공사의 공급신청을 건축물 완공이 임박할 때까지 미뤄 왔고, 이로 인해 일정에 떠밀린 설계업체와 가스시공업체는 손실을 감수하고 입주시점이 임박해 도시가스사가 제시한 방식으로 가스공사를 서둘러 마쳐야 했다.
역삼동 오피스텔 도시가스 갑질 논란 전말
피해업체들이 이번 사건을 ‘도시가스사의 갑질’이라 부르는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발주처와 도시가스사덩치 등 큰 회사 사이에서 먹이사슬 말단에 있는 시공사와 설계사무소가 결국 설계 변경에 따른 부당한 손실을 떠안았기 때문이다.
처음 건설사로부터 오피스텔 설계를 의뢰받은 A설계사무소가 도시가스사를 대상으로 신규 건축할 오피스텔에 대한 가스공급 질의회신을 한 시점은 ’19년 12월 3일이었다. 도시가스사는 3일 후인 6일 인근 저압(PE 225A)관을 연결해 가스공급이 가능하다고 회신했다.
설계사무소측은 질의서를 통해 오피스텔의 건설 규모와 면적, 가스사용량, 예상 가스소모량, 오피스텔과 근린생활시설 규모 등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예상시설의 분담금 규모와 분기점 ▲공급압력 ▲정압기 설치 여부 등 도시가스 공급가능 여부에 대한 검토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도시가스사는 배관망 도면과 함께 사용량을 감안해 인입관경을 산정한 결과 저압 PE 225A로 공급이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회신을 받은 설계업체는 도시가스사의 검토결과를 바탕으로 오피스텔에 대한 설계를 마쳤다. 공사 과정에서 가스사용량은 오히려 감소했으나, 별도 변경사항은 발생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막상 건설사가 오피스텔의 건설공사를 마친 후 올해 7월 가스공급을 위한 가스 인입관 및 가스공급 압력을 재확인하는 과정에서 도시가스사의 입장은 달라졌다. 당초 저압관으로 공급이 가능하다고 했던 도시가스사는 말을 바꿔, “인근에 중압배관이 설치돼 있고, 중압으로 (가스)공급이 가능함으로 저압배관을 부설할 이유가 없다”는 답변을 내놨다. 당시는 이미 오피스텔건축이 마무리된 상황이었다.
앞서 건축물 공사가 진행 중인 과정에 가스공사를 의뢰받은 B가스시공사가 절차에 따라 가스공급 신청을 했으나, 도시가스사는 당시만 해도 ‘가스공급관로 미부설’을 이유로 신청을 회피했고, 결국 준공이 임박한 상황에서야 ‘인근 중압관을 통해 가스를 공급받아야 한다’는 답변을 내놓은 경우였다.
‘불가피한 손실, 책임 없다’는 도시가스
건축물 준공과 입주를 코 앞에 둔 A설계사무소와 B시공사 입장에서 이번 사건은 날벼락 이었다. 당장 저압에서 중압으로 가스압력이 변경된데 따른 추가 공사비도 문제였지만, 해당 건축물의 경우 저압의 가스공급을 고려해 별도 정압기 설치부지 등을 확보하지 않은 상태로 건물이 지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완공을 코앞에 둔 상태에서 설계사무소와 시공사는 부랴부랴 공유부지에 정압기를 설치키로 하고, 도시가스사의 요구대로 중압으로 가스를 공급받아 주민들의 입주 전 간신히 가스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에 대한 책임을 도시가스사는 설계업체에 돌렸다. 처음 공급 질의에서 도시가스사는 ‘오피스텔’을 근거로 ‘저압으로만 공급가능’이라 답변 했지만, 이후 내관업체 선정 후 ‘변경사항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설계사무소 측은 “전체 가스사용량을 오피스텔과 근린생활시설의 예상 규모를 근거로 가스소요량을 추산해 도시가스사에 가스공급 가능 여부를 질의했고, 당시 도시가스사측이 임의로 세대 수만을 근거로 저압관으로 시공해야 한다고 답변한 것”이라고 밝혔다. 즉 “도시가스사가 임의대로 오피스텔이 개별난방일 것이라 추정했고, 최종 가스시설의 시공 직전에야 중앙난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으로 보인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결국 도시가스사가 잘못된 추정으로 저압관 공급을 결정해 놓고, 나중 일방적으로 이 시설이 특정사용시설에 해당해 중압으로만 공급할 수 있다는 답변을 내놓은 것이란 설명이었다.
‘기다려~’ 아쉬운 측이 언제나 ‘을’
이번 사건을 되짚어 보면 설계사무소의 첫 질의시점과 가스시설 공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여러 차례 손실을 피할 기회가 있었다. 중간 과정에서 가스공급방식과 시설을 제대로 협의했다면 해당 오피스텔의 난방 방식이 중앙난방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건물의 준공이전 가스압력에 따른 설계변경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었을 것이란 점 때문이다.
A설계사무소는 ’21년 7월 도시가스사의 가스예상 공급관로의 구성도면 수령한 후 ’22년 4월 가스시공업체와 함께 가스공급에 대한 신청문의를 진행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도시가스사측은 공급관로 미부설을 이유로 배관 부설 이후 다시 공급신청을 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후 공사 일정 등을 고려해 가스시공업체는 ’22년 5월 가스안전공사에 기술검토승인을 마쳤다. 그리고 다시 도시가스사에 다시 공급시기를 문의했지만 역시 ‘관로공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가스배관 공사 후 공급신청을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결국 가스시공사는 더 이상 공사를 미룰 수 없다는 판단에 도시가스사가 답변한 예상 관로대로 ’22년 8월 건축물의 인입지점에 도시가스배관 관통을 위한 슬리브를 설치했다. 그리고 다시 올해 6월 다시 가스공급을 신청했다.
결국 준공을 4개월여 앞둔 상황에서야 도시가스사는 기존 저압관이 아닌 중압을 통해서만 공급이 가능하다는 통보를 해온 것이다.
도시가스 수요감소 진짜 원인은 ‘갑질 서비스(?)’
그간의 과정을 보면 도시가스사측은 건축이 임박한 시기까지 다양한 이유로 시공사의 가스공급 신청을 거절했다. 그리고 건축물 준공이 임박한 상황에서 기존 설계된 저압공급을 중압으로 변경할 것을 요청했다.
설계사무소와 시공업체의 손실 감수로 이번 사건은 일단 큰 문제없이 일단락 됐다. 하지만 사건이 커지기전 오피스텔의 건축 과정에서 도시가스사와 설계사무소 간 충분한 소통이 이뤄졌다면 이번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 갈등이었다.
더욱이 문제가 된 오피스텔 난방방식은 도시가스사 입장에서 ‘개별난방이 아닌 중앙난방으로 달갑지 않은 고객’이란 말도 나온다.
사건과 관련 설계업체와 건설사, 가스시공업체는 “현재도 공급권을 가진 도시가스사의 이같은 상식 이하의 행동이 현장에서 비일비재하게 반복되고 있다”며 “이는 독점 공급권을 가진 도시가스사의 일방적인 갑의 횡포라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이런 일방적인 일처리가 계속 된다면 앞으로 위험하고 번거로운 도시가스를 굳이 건물에 적용할 필요가 있겠나”며 “건설사부터가 도시가스 사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건물을 설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사건에 대해 해당 도시가스측은 회신 공문에 ‘399세대(취사, 난방)이라 기입한 것은 (해당 시설을)도시가스사업법 내 공동주택 등으로 판단해 개발난방방식 도시가스 공급을 뜻한다’며 설계사무소측이 공동주택 등이 아닌 중앙난방방식을 채택한 것을 알려주지 않은데 따른 문제였다고 해명했다. 또 "당시 저압으로 가스공급을 회신한 것은 사용자의 상황을 고려해 최선의 판단을 한 것"이라며 "인근 중압관이 있음에도 멀리 있는 저압관을 100여m 이상 끌고 오는 것이 훨씬 비용이 많이 든다. 단순히 이번 문제를 비용 문제로만 보는 것은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혀왔다.